새로운 여행의 첫 페이지를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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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JU

 

제주 겨울의 오감을 즐길 수 있는
서귀포향토오일장

한라산의 바람과 남쪽 바다의 파도가 만나는 장터에서 제주의 겨울을 만끽해보자. 투박하지만 정겨운 제주 사투리가 넘실대는 할망장터부터 영혼까지 데워주는 풍년식당의 고기국밥, 기다림마저 달콤한 지숙이네 호떡 그리고 바다 향 가득한 보말칼국수까지. 닷새마다 열리는 서귀포의 가장 활기찬 부엌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삶의 냄새가 짭조름한 바닷바람에 실려오는 곳
서귀포향토오일장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동홍동에 서는 시장이다. 1974년 서홍동에서 처음 문을 열어 서귀포의 살림살이를 책임지다가, 1995년 지금 자리로 옮겨왔다. 장이 열리는 날은 매월 4·9·14·19·24·29일, 닷새에 한 번이다. 장날이 되면 동홍동 중산간도로 옆, 전국 재래시장 가운데 손꼽히는 규모의 넓은 주차장에 차가 가득 들어찬다. 시장 안은 투박하지만 정겨운 제주 사투리가 파도 소리처럼 넘실댄다. “혼저옵서예~”.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귓가에 감기는 제주어는 낯선 여행자에게 건네는 첫인사다. 대형마트의 세련된 매대 대신 색색의 파라솔 아래 햇살에 그을린 상인들의 얼굴이 먼저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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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 시장과는 또 다른 제주 특유의 활력이 이곳에 흐른다. 손에 장바구니를 든 도민들과 어깨에 에코백을 멘 여행자가 한데 어우러지고, 카메라를 든 사람도 자주 마주친다. 가장 먼저 후각을 자극하는 것은 귤 냄새다. 노란 감귤과 진초록 하우스 감귤이 산처럼 쌓여 있고, 옆에서는 브로콜리, 당근, 양배추가 알록달록 색을 맞춘다. 세월이 묻어나는 포장마차 지붕 아래로는 은빛 갈치와 옥돔이 반짝이고, 해조류가 수북이 담긴 바구니에서는 바다 내음이 훅 끼쳐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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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말은 이런 곳에 어울린다. “이거 얼마우?” “오늘 건 싱싱허우다, 맛 좀 봐라.” 제주 사투리가 오가는 사이, 귤 한 알이 슬쩍 손에 쥐어지고, 말린 고등어 한 토막이 비닐봉지에 담겨 나간다. 시장은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면서, 오늘 하루의 안부를 묻는 동네 사랑방이기도 하다.
장터의 속살을 파고들다
서귀포향토오일장은 품목별로 구역이 나뉘어 있다. 장터 안쪽으로 들어가면 수산물 코너, 어시장이다. 비릿하기보다는 신선한 바다 냄새가 먼저 코를 스친다. 스티로폼 박스와 스테인리스 수조 위에는 제주 바다에서 막 건져 올린 생선들이 줄을 선다. 제철 맞은 은갈치와 고등어, 옥돔, 참조기는 기본이고, 계절에 따라 갑오징어와 한치, 문어, 알배기 꽃게가 얼굴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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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물 좋수다!”라고 외치는 상인들의 목소리엔 바다의 거친 파도를 견뎌낸 강인함이 묻어 있다. 갓 잡은 한치와 자리돔이 펄떡이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이곳이 섬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실감하게 된다. 즉석에서 회를 떠주는 손놀림은 가히 예술이다.
어시장이 파도처럼 역동적이라면 채소전은 밭의 평온함을 품고 있다. 서귀포의 비옥한 화산토에서 자란 겨울 무와 양배추, 구좌 당근이 흙 묻은 채로 널려 있다. 산지에서 바로 가져온 채소들이라 잎이 탱탱하고 줄기에 힘이 있다. “이건 오늘 아침에 딴 거우.” 상인이 건네는 한마디에서 밭과 시장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짧은지 가늠해본다. 특히 ‘할망장터’라 불리는 구역은 꼭 둘러봐야 한다. 꼬부랑 할머니들이 직접 텃밭에서 키워 가져온 소박한 푸성귀 앞에서는 흥정조차 사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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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 시장 한쪽은 온통 주황빛이다. 제철 맞은 하우스 감귤부터 한라봉, 천혜향까지. 껍질이 얇고 과즙이 꽉 찬 서귀포 감귤 하나를 입에 넣으면 새콤달콤한 제주 태양과 바람의 맛이 팡 터진다. 오일장에 귤만 있는 건 아니다. 수박, 멜론, 바나나, 참외, 사과, 유자, 체리까지 계절마다 다른 과일이 자리를 바꿔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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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것 빼고 다 있는 만물상 구역도 있다. 화려한 꽃무늬의 ‘몸뻬 바지’가 깃발처럼 펄럭이는 잡화 구역은 보물찾기하듯 뒤지는 맛이 있다. 육지에서는 보기 힘든 투박한 농기구, 할머니들의 필수품인 덧신 그리고 추억을 소환하는 양은 냄비 등 예스러운 물건들 사이를 거닐다 보면 어린 시절 엄마 손을 잡고 갔던 그 옛날 장터의 냄새가 나는 듯하다. 이 구역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건 대장간이다. 그 앞으로 낫과 호미, 괭이, 톱 같은 농기구가 줄지어 있는데, 그중 ‘제주나대’라고 불리는 독특한 모양의 칼이 눈에 띈다. 칼과 낫의 중간쯤 되는 이 농기구는 나무가지를 자르거나 잡풀을 제거할 때 꼭 필요한 도구라고 한다. 장날이면 섬 구석구석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이 일부러 이 대장간을 찾아와 새 농기구를 맞추거나 무디어진 날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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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맛봐야 할 오일장의 3대 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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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구경의 절반은 먹는 재미가 아닐까. 시장 골목 안쪽, 김이 자욱하게 피어 오르는 집이 있다. 서귀포향토오일시장 단골들이 그냥 ‘국밥집’이라 부르는 곳, 풍년식당이다.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허름한 노포인데, 장날이면 현지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대표 메뉴는 고기국밥. 토렴한 밥 위로 돼지고기 수육이 넉넉히 올려져 나오고, 국물은 그릇 가장자리까지 가득 찬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를 정도다. 진하게 우려낸 육수는 잡내 없이 구수하고, 숟가락을 뜰 때마다 딸려 올라오는 두툼한 돼지고기는 장터의 인심 그 자체다. 장날을 포함해 평일 아침 7시부터 끓인다는 육수의 맛은 또 어떤가. 후루룩 국물을 들이켜면 마음속의 한기까지 싹 내려가는 기분이다. 반찬은 셀프. 깍두기, 김치, 파채, 나물과 젓갈을 골라 담아와서 한 상을 차리면 한정식이 부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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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든든히 채웠다면 이제 달콤한 간식이 맛볼 차례다. 고소한 기름 냄새를 따라가다 보면 긴 줄을 마주하게 되는데, 십중팔구 지숙이네 호떡 앞이다. 이 집 호떡은 기다림조차 즐거움으로 만든다. 노릇노릇하게 튀기듯 구운 호떡을 한 입 베어 물면, 바삭한 겉면 속에 숨어 있던 뜨거운 설탕 시럽과 씨앗이 입안 가득 퍼진다. 쑥이 들어가 은은한 초록빛을 띠는 호떡은 향긋함까지 더해져 쉬이 물리지 않는다. “뜨거우니 조심해 먹읍서.”라며 건네주는 사장님의 무심한 듯 다정한 한마디에 호호 불어가며 먹는 호떡 맛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시장을 돌아다니느라 기운이 떨어진 여행자에게 이만한 처방전이 없다.
서귀포 사람들이 어시장에서 저녁 반찬거리를 결정하고 채소·곡물 코너에서 한 주의 밥상을 꾸리는 사이, 감귤·과일 구역에서는 계절이 박스로 포장되어 육지로 떠난다. 여행자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제주의 겨울이 어떤 맛과 냄새, 색으로 채워지는지 생생하게 확인한다. 제철의 맛을 선사하는 풍요로운 부엌이자, 하루짜리 축제의 장. 올 겨울 서귀포향토오일장을 찾아야 할 이유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 서귀포향토오일시장 운영일 : 4, 9, 14, 19, 24, 29일
  • 영업 시간 : 9:00am~6:0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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