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생태숲에서 동쪽으로 뻗은 숫모르편백숲길을 천천히 걸어간다. 시선 두는 데마다 온통 녹음이어서 눈을 감아도 초록 잔영이 일렁인다. 영롱한 새소리가 배경 음악이 되어 주는 길, 이따금씩 건천을 건너가면서 느릿느릿 앞으로 향한다. 온 세상 싱그러움을 그러모아 펼친 듯 여름 숲의 초록빛 물씬하고, 사위에서 날아드는 소리와 향은 어지러울 정도로 진하다. 샛개월이오름을 지나, 마침내 편백나무 군락과 조우한다. 우아하며 신비한 편백나무 행렬이 언덕을 뒤덮고는 그 너머로 이어진다. “아름답네, 정말 평화로워.” 밝은 표정으로 곁을 스치는 이들의 감탄사에, 넌지시 화답의 미소를 보낸다. 아름답다고, 정말 평화롭다고, 여름 제주의 숲에선 언제나.